11/2007

 

 

 

 

 

 

 

 

 

 

 

 

  강정규 연재동화

 

낮 달 (2)

 

 

 

 

 

 

 

 

 

 

 


강 정 규

동화작가,
"시와 동화" 발행인,
한국아동문인협회장,
단국대 초빙교수.






 


방엔 불을 지피지 않았다. 밥은 마당에서 화덕에 해먹었다. 앞 뒤 방문엔 모기장을 발랐다. 그래도 더운 날은 더웠다. 특히 바람이 없는 날은 몹시 무더웠다. 엄마는, 미역을 감고 가만히 들어가 냉골에 등대고 누워있으면 곧 시원해진다고 말했지만, 그러고 있으면 곧 잠이 들 거라고 했지만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쉬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홑이불 밖으로, 가슴 위에 두 손을 깍지 끼고 누워있었다. 어머니가 꼭 그러라고 했다. 그날 나는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괴춤을 추스르다가 독뱀같이 발딱 고개를 쳐든 내 고추를 보았다. 나는 그걸 만지다가, 느닷없이, 기침소리도 없이 엄마가 변소 문을 여는 통에 너무나 놀랜 나머지 발을 헛디딜 뻔했다. 엄마는 그날부터 내 손을 이불 속에 넣지 못하게 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등목을 하는 중이었다.
“영 시원치가 않여.”
“그럼 워치케 헌대유.”
“홀딱 벗구 들어부었으면 조컸는디, 시방.”
“애가 방금 들어갔는듀.”
“잠들었겄지 뭐.”
“그럼 가만가만 벗어봐유.”
“대문은 잠궜지?”
“야.”
“어허, 시원타!”
“좋으시겄슈.”
“당신도 벗구 돌아앉어 봐!”
“어이구 숭혀라.”
“얼매나 시원헌디.”
“됏슈.”
비행기는 밤하늘 높이 떠서 그냥 제자리를 맴도는 지 계속해서 웅웅거렸다. 문밖이 가끔 훤해지고 먼 산등성이 등마루가 쇠등같이 나타났다 지워지는 걸 보면 큰 강 건너 도시에 폭격이라도 힜는 모양이다. 나는 어서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잠이 쉬 오지 않아 홑이불 밖으로 깍지 낀 손목에 끙, 힘을 주었다. 울타리 밖을 줄지어 지나가는 군화소리가 저벅저벅 들렸다.
이따금 보이는 군인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발문 사고 소문, 쌕쌕이 기총소사, 장백산 줄기 줄기에서 우리의 빛나는 김일성 장군으로 끝나는 노래, 소년단의 붉은 마후라, 인민재판,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쇠붙이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신기한 것이 밧테리라는 물건이다. 된 엿같이 생긴, 어떤 것은 조청같이 끈적거리는 접착제와 함께 딱딱한 덩어리를 손아귀에 잔뜩 힘주어 떼어내면 어른 손가락만한 크기, 또는 어린애 팔뚝만한 원통형의 건전지가 분리됐다.
별사탕이나 눈깔사탕 같은 걸 커다란 유리항아리에 담아놓고 파리를 쫓으며 지켜앉은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그런 건전지를 하나씩 떼어 팔곤 했다. 한 쌍을 사면 꼬마전구를 하나씩 덤으로 준다했다. 아니, 그건 덤이 아니라 필수다. 건전지만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여하튼 그 꼬마전구를 건전지와 연결된 작은 용수철에 끼우면 반짝, 불이 들어왔다. 되게 밝았다. 오일장에서 계란과 바꿔오는 석유등잔불에 비하면 제삿날 촛불도 밝은데 그것은 거기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고 냅다 흔들어도 그대로 있었다.
어디 사용하던 건진 모르나 폐품인 것만은 분명한데 거기 남아 흐르는 전류가 빛을 내는 그 요상한 물건을 들고 나는 한 밤중에도 이불 속에서 혼자 놀았다. 순전히 그걸 한 번 더 켜보기 위해 한 밤중에 일부러 뒷간에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누가 발견 (그렇다, 그건 일대 발견이었다.) 했는지 그걸 가지고 새를 잡는다했다.
초가지붕에 사다리를 걸쳐놓거나 키 큰 아이 목마를 타고 처마밑 새구멍을 쑤시는 거야 진작부터 익혀온 방법이었다. 거기 소위 ‘덴지’라 불리던 그 물건이 일약 위력을 나타낸 거다. 사다리를 오르거나 목마를 타는 데까지는 전과 마찬가지, 한 손은 덴지불로 새구멍을 비추고 다른 한 손으로 구멍 속을 더듬으면 거기 따뜻한 새알이나 가슴 휘둥대는 어미새가 앉아있기 마련이고 목마를 탄 아이는 그걸 얌전히 꺼낼 수 있었다. 그렇게 꺼낸 새알은 볼 것 없이 삶아먹었다. 어미새는 목을 비틀어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다음 소금 뿌려 등걸불에 구웠다.
“참새가 말여, 쇠잔등에 올라앉아 뭐라는 중 아남?”
“뭐랴간디?”
“늬 괴기 한 근 허고 내하고 바꿀래? 그런댜.”
어른들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대숲 속에도 새집은 있었다. 처마 밑을 다 뒤지면 대밭으로 장소를 옮겼다. 새들은 눈부신 불빛에 날지 못하고 잡혔다. 푸드덕, 날다가 칠흑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그것을 댑싸리비로 후려쳐 잡았다.
목침 두세 개는 족히 묶어놓은 크기의 대형 밧테리도 있었다. 어른들은 거기 멜빵을 달아 걸머지고 개울로 나갔다. 어디서 목이 길다란 장화까지 구해 신고 한 손엔 장님 지팡이 같은 막대기, 다른 한 손엔 끝에 뜰채가 붙은 작대기를 들고 개울물 속으로, 또는 둠벙물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다. 그리고 밧테리와 연결된 막대기와 작대기를 물속에 담그고 이리저리 휘저으면 세상에, 붕어와 미꾸라지와 피라미는 물론 메기며 가물치, 민물장어까지 허연 배를 뒤집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걸 가볍게 뜰채로 떠올려 양동이에 옮겨 담으면 끝이다.
잉어나 가물치 같은 큰 고기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칼을 들고 비늘을 거슬러 벗기거나 배를 가를라치면 펄쩍 뛰거나 버둥거리다 손에서 빠져나가기 일쑤다.
“한번 지져줘!”
때마다 누군가가 곁에서 한마디 거들고, 뒤늦게 도착한 밧테리 담당이 우물가로 다가와 막대기와 작대기 끝으로 한 번 고기를 슬쩍 건드린다. 그러면, 그 커다란 물고기는 펄쩍 한번 뛰어 오르거나 파르르 진저리를 치다가 잠잠해진다.
그 고기는 한참 후에야 마취에서 깨어난 듯 마침내 꼬리를 치거나 아가미를 벌떡거리는데, 그 때는 이미 배를 가르고 밸을 후벼낸 이후여서 꼬리 머리 할 것 없이 토막난 다음이다. 그걸로 어른들은 매운탕을 끓이거나 덴뿌라를 해 술을 마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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