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007

 

 

 

 

 

 

 

 

 

 

 

 

  오늘을 바라보며

 

고맙다 이쁜아

 

 

 

 

 

 

 

 

 

 

 





유연희

“글로벌여성리더십센터 프로그램실장”
yaniyoo@hanmail.net






 


9년간 함께 살아온 고양이, 이뿐이를 잃어버렸다. 첫날은 이뿐이가 안보여서 몸이 안 좋아 어디 들어가 푹 쉬고 있나 싶었다. 그런데 ‘호랑이 같이 생긴 뚱뚱한 고양이’를 계단에서 보았다고 이웃이 말해주었을 때 모든 게 분명해졌다. 도대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다니 죄책감이 컸다. 멀리 가지 않았을 것 같아 5층의 옥상과 지하실을 몇 번이고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새삼 동네를 둘러보니 음식쓰레기조차 통 속에 있어서 딱히 먹을 게 없다. 순둥이 이뿐이는 길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힌 길걍이들과 싸움이 붙어 중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은 가족에게 갈등이 생기는 것을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이 부주의해서 이뿐이가 집밖에 나가게 된 거라고 몰아세웠고, 찾아내라고 울면서 괴롭혔다. 남편은 평소 밥을 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이뿐이는 ‘아저씨’ 취급을 했다. 남편이 가끔 이뿐이를 툭툭 건드리며, ‘이 지지배는 여기까지 따라와서 내가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고생여. 미국에 두고 왔어야 하는디’라고 말하는 것을 알아들었던 듯하다. 그런데 남편은 그게 나름 이뿐이를 이뻐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뿐이가 없어진 것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차라리 눈앞에서 죽었더라면 맺음이 되어서 맘이 편했을 것이다. 이뿐이 때문에 내가 좀 더 사람답게 된 것, 이뿐이가 준 사랑 등을 생각하고 맘속으로 이뿐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눈물 흘렸다.

우리는 이뿐이를 찾기 위해 별식이 들어있는 깡통과 수저를 들고 몇 번이고 동네를 돌았다. 이뿐이가 안보이면 밖으로 나오게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수저로 깡통을 두드리며, ‘이뿐아’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선가 시속 백킬로로 튀어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튀어나오는 고양이란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퇴근하자마자 다시 깡통과 수저를 들고 집을 나섰다. 깡통을 두드리며 ‘이뿐아’라고 불렀다. 그러자 위에서 조그맣게 ‘야옹,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몇 번이고 내 부름에 ‘야옹’이라고 응답하는 목소리가 분명 우리 이뿐이였다. 알고 보니 담이 쳐진 옥상 아래에 책상 크기 정도의 작은 옥상이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이뿐이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이는 나를 보고 야옹거리며 좋아하였다. 결국 119의 도움으로 내가 허리에 밧줄을 묶고 내려가 이뿐이를 구출할 수 있었다. 119가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나중에 꿰어보니 사람들이 계단에서 이뿐이를 보고 밖으로 쫓아냈는데 이뿐이는 도로 들어왔다. 그러나 문이 다 닫혀 있어서 옥상으로 갔고, 어쩌면 아래에서 엄마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계단이 아닌 다른 출구를 찾다가 그 작은 옥상으로 내려갔던 듯하다. 아래는 낭떠러지였고 좁은 공간에다가 힘이 없던 이뿐이는 높은 옥상으로 다시 뛰어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뿐이는 약간 가벼워진 것 말고는 별로 아픈 데가 없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 배를 채우고 나서는 별별 소리를 내며 먼저 말을 걸었다. ‘야홍, 흥, 야옹, 얭!’ 이뿐이는 ‘아저씨’를 ‘아빠’로 승격시켜 주었고, 아빠는 별식을 마구 주었다. 내가 이뿐이를 안고 문밖으로 내보내려는 시늉을 하자 이뿐이는 발에 찍찍이를 달아 놓은 듯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문밖은 이제 질색인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나를 못됐다고 나무랐다. 전에는 남편이 이뿐이를 괴롭히면 내가 나무랐는데 역할이 바뀐 것이다.

다음 날 출근길, 앞에서 담배 피며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전에는 짜증을 냈는데, 모두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했고 행복하였다. 그 손바닥만 한 옥상에 갇혀 며칠 비를 맞고 추운 밤을 보내며 굶주린 이뿐이는 우리를 가볍게 용서했다. 원망의 눈초리도 없이 전보다 더 크게 더 오래 그릉거리며 좋아한다. 8주밖에 안된 이뿐이를 처음 입양하며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몰라 걱정을 했었다. 그 때 한 교인이 고양이는 용서를 잘하는 ‘forgiving'동물이라고 알려주었는데 과연 늘 그랬다. 용서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고양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하고, 있을 때 고맙다고 나도 그릉거리며 말하고 싶다. 다들 이런 맘으로 계속 살 수 있다면 세계평화는 시간문제일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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