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11/2007

 

 

 

 

 

 

 

 

 

 

 

 

  현장의 소리

 

한국교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요즘 한국 사회에서 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더러는 악의적인 비방이 없지 않으나 대체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냉소와 비난이 담겨 있습니다. 소낙비처럼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잠시 기다리는 게 상책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한국 교회 안에 잠복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계 일각에서도 ‘이래서는 안 된다.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구호로 여겨질 뿐입니다.

한국교회의 내면을 진단할 수 있는 사례 두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금년 7월 상암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와 분당샘물교회 구성원들의 ‘아프간 인질 사태’입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는 모처럼 한국교회 진보-보수가 한 자리에 어울려 일치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회의 기본 동기가 ‘대부흥’ 즉, 교회의 양적 성장에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이미 사그라졌다고 봅니다.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팽창주의야말로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병폐임에도 교회 지도자들은 변함없이 ‘부흥’ ‘성장’이 입에 달렸습니다.

아프간 인질사태는 어떻습니까? 여론의 따가운 질책은 뒤로하고, 교계 내에서 ‘선교방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하지만 ‘선교방식’이 문제의 본질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진솔한 자기 성찰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부 진보적인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공격적 선교, 제국주의적 선교, 배타적 선교 등을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안에 돌팔매를 던짐으로써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고 선전하는 것 말고 돌아오는 게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선교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로 서 있을 뿐 본연의 자리로 내려가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모름지기 행위 이전에 자기성찰에서 내적인 힘을 얻게 되고, 존재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자기 성찰의 준거가 종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내적 성찰은 시간 내 존재 즉, 인간의 ‘피조성’에서 출발합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들이 갈등, 번민, 고통을 수반하는 게 피조성의 본질입니다. 그리하여 피조성을 뛰어넘으려는 만용과 함께 피조성을 수렴하려는 자기 부정 사이에서 신앙의 자리가 정립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종말신앙은 피조성을 승화시키는 기준점이 됩니다. 종말신앙은 인간의 모든 욕구들을 하나님의 구속행위에 둠으로써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오만을 거부합니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건강성은 종말신앙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종말신앙은 차안과 피안, 시간의 이쪽과 저쪽을 수렴하면서도 어느 한 쪽에 기울어지지 않게 합니다. 양쪽 극단은 속물이요 염세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시간 이쪽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에서 종말신앙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세속의 욕구를 불덩이로 삼아 자기를 부풀리는 게 한국교회 현실입니다. 보수-진보가 피장파장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알 종교를 탓할 게 못됩니다. 오늘의 보상을 바라고 믿는 행위들이 바알 종교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밖에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결과에 의해 자기를 해석합니다. 잘 살면 복 받은 것이요, 못살면 복 받지 못한 것입니다. 거짓이 일상화되고, 물질주의에 천착하고, 성공에 도취하고, 패거리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역사참여라는 미명 하에 정치 기술자가 되어 가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열정적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려도, 애통하는 기도를 드려도, 길거리로 나가 십자가 행진을 벌여도 영혼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서 존재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회개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습니다. 종말신앙의 회복 없이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지 못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여기는 욥을 향한 하나님의 질책은 오늘 한국교회에 절박하게 들립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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