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배가 도망갔다는 날, 그날 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울다 잠든 줄 알았던지 소근소근 이렇게 말했었죠. 어쩌면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지만.
“개는 원래 야생동물이라서 죽을 때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혼자 죽는대요. 우리 다배는 거기다 영리하기까지 해서 우리가 귀찮아하지 않도록 몰래 가만히 빠져나간 거예요.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곳 어디 가서 죽은 게 확실해요. 그러니 너무 슬퍼말아요.”
“그래서 당신이 일부러 현관문을 열어둔 거죠? 그리곤 찾지도 않는 거죠? 다배가 어렸을 때 산책 나갔다가 잃어버린 적이 있죠? 아버님 댁에서 잃어버린 거 말구 우리집에서, 내가 데리구 동네 한바퀴 돌다 잃어버렸을 때, 그때는 당신 어떻게 했죠? 광고지에 사진까지 넣어가지고 ‘연락주시면 후사하겠다’고 사례금 액수까지 밝히고 그렇게 애써 찾았잖아요. 그런데, 늙어서 털이 빠지고 눈멀어 앞을 못보고 여기저기 찧고 돌아다니고 먹을 것도 못 찾고 잠만 자고 코만 골고 침만 줄줄 흘리고 눈곱만 끼고 그렇게 되자, 어서 죽기를 바라다가 어느 날 살그머니 문을 열어 놓았던 거죠?”
“아니지. 그렇지 않아!”
“아니면 찾아야죠. 어렸을 때는 잃어버려도 누군가 눈에 띄면 이쁘니까 데려다 귀하게 키웠겠지만, 늙은 개는 더럽고 보기 싫고 그러니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잖아. 그러니까 더욱 불쌍하구 그러니까 더욱 찾아야지. 그런데 안 찾고 있잖아요?”
엄마는 우는 것 같았어요. 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죠.
“가배야! 가자, 어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강아지가 좋은 새 주인 만나는 걸 방해하는 거라고 했잖니. 우리가 데려가지 않을 바엔 어서 비켜주자구.”
“그러니까 데려가자구, 아빠!”
“가배야, 비가 오려나부다. 어서!”
강아지는 내게 기어올라 계속해서 내 볼을 핥고 손등도 핥았어요. 놓으면 달겨붙고 내려놓으면 다시 악을 쓰며 달라붙었죠. 우리마저 놓고 가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어요.
“가자!”
아빠가 드디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나빠, 아빠!”
나는 울면서 천천히 산을 내려왔죠. 아빠 나빠. 그러나 어쩔 수 없었죠. 그리고 그 날 밤, 비가 억수로 내렸어요.
나는 저녁밥을 먹고 다배가 먹던 사료를 찾았죠. 우산을 쓰고 다시 산을 올랐어요. 이번엔 거꾸로 가는 코스를 택했어요. 아파트를 돌아 우리 쌀가게, 맛있는 과일집, 이 편한 슈퍼, 기쁜 교회, 안 아픈 치과, 다 낫는 약국, 시원한 목욕탕, 머리 못하는 집, 빵집아저씨네 빵집 등이 사방으로 있는 네거리. 전신주 밑에는 오늘도 뻥튀기 아저씨와 새장수와 1,000원짜리 모둠팔이 아저씨가 코펠에 무언가를 끊여 소주를 마시고 있었어요.
날은 이미 저물었죠.
등산객들은 서둘러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요. 오르는 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사료그릇을 들고 산을 오르자 사람들이 이상스레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비에 젖은 길이 미끄러웠어요 사료그릇을 든 채, 찔레 숲 속으로 한번 굴렀어요. 사료그릇은 비어있었죠. 나는 땅바닥에 흩어진 사료를 대충 긁어모아 다시 담았어요. 어둠 속 언덕위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크르릉 크르릉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어요. 끙끙거리는 소리는 다배가 아파서 신음하는 소리고 크르릉 소리는 다배가 코를 고는 소리 같았어요. 무서운 짐승이 으르릉 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어요.
‘무서운 산짐승이 내려오면, 다배(-가 아니라 강아지)는 목줄에 묶여 있으니 한 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잡혀 먹히고 말거야. 어서 가봐야 해. 어서 가서 지켜줘야 해.’
이렇게 서둘다가 나는 발을 헛디뎌 나뒹군 것이었죠.
다시 크르릉 크르릉, 산이 울렸어요. 미끄러운 언덕길을 뛰어올랐어요. 어둠속에 이동식화장실이 있고 그 뒤쪽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다배!”
내가 소리 질렀죠. 그러자 화장실 뒤에서 늙은 다배같이 생긴 커다란 짐승이 강아지를 입에 물고 나왔어요. 눈에 불을 켜고, 늙은 다배가 자기 어릴 적 모습과 똑같이 생긴 강아지를 물고 산골짜기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어요.
“다배!”
내가 다시 소리쳤죠. 그러다 잠이 깼어요.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어요. 잠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었어요.
간밤에 비는 갰어요. 아빠를 졸라 비닐봉지에 사료를 담아들고 산길을 올랐죠. 어젯밤 꿈속에서처럼 반대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어요. 그래야 빨리 현장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발 다배야, 거기 있어줘.’
나는 속으로 이렇게 빌었죠. 그러면 데려오는 거라고 아빠와 약속이 되어있었거든요. 어젯밤 비 맞고 죽었으면 그냥 거기 묻어주겠다고 엄마와도 약속했거든요. 그래서 베란다 빈 화분 속에 있던 꽃삽도 챙겼거든요.
‘제발 거기 있지 마!’
나는 이렇게 빌기도 했어요. 아빠와 아무리 약속이 되었다지만 엄마는 개를 다시 안 키운다고 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누군가 이미 데려가서 거기 없기를, 주인이 맘을 고쳐먹고 다시 데려가거나 버린 것을 알고 누군가 새 주인이 데려가서 거기 남아있지 않기를 나는 속으로 빌었던 거죠.(다음호에 계속)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정한 2007년도 우수문학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