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입니다. 다윗이 아말렉을 철저히 응징하여 그동안 억압받았던 이스라엘의 자존심을 회복했습니다. 한편 불레셋과 전투를 벌인 사울은 세 아들과 함께 전사하는 참사를 당하게 됩니다. 불레셋은 사울의 갑옷을 벗겨 아스다롯 신전에 보관하고, 시신은 벳산 성벽에 매달았습니다. 소식은 다윗에게도 전해집니다. 그토록 자기를 죽이려든 정적이 죽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뜻밖에도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합니다. 그리고 친히 조가 弔歌를 지어 온 유다 백성이 부르게 합니다(삼하1:17-27).

조가의 첫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정적의 죽음을 두고 이스라엘의 영광은 무엇이고, 두 용사는 무엇인가?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사나운 발톱을 벗어나 가나안에 정착해서 나그네들이 학대받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지만, 주변의 아말렉과 블레셋 같은 부족들로부터 끊임없이 능욕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실의 냉혹함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토록 싫어하던 왕을 세워 강력한 나라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운 왕이 바로 사울입니다. 그런 왕이 이방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었으니, 이거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이 무너진 것이요, 이스라엘의 꿈과 희망이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의 조가는 이런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닌 ‘슬픔의 파토스’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통일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슬픔의 파토스를 지닌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바울은 “(너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4-21)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개인적인 윤리’로 볼 수 있으나, 넓게 보면 ‘공동체 윤리’이기도 합니다.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함께 나누는 슬픔의 파토스가 있어야 합니다. 비록 원수일지라도 그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우선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는 게 도리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는 것이 됩니다. 다윗은 정적의 죽음 앞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절제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슬픔을 자기 슬픔으로 내면화시켰습니다. 저 옛날 다윗이 지닌 슬픔의 파토스는 오늘날 북한 동포의 굶주림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께서 최후 심판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양과 염소를 구분할 수 없지만, 최후 심판 때 하나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세상에 살면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어떻게 했느냐가 관건입니다.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본 것”이 바로 “내게”한 것이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마25:35-36).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 라는 말에는 장구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파라오의 학정에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이요, 남의 나라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겔)요, 남편 잃은 과부요, 부모 없는 고아요, 가난한 백성이요, 병든 자요, 차별받는 비정규직 등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슬픔의 파토스를 지니고 사는 이들입니다.

한국인은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주의 파토스’를 지닌 민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넘쳐나도, 비정규직의 한숨소리가 깊어져도, 생활고에 짓눌린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도, 변함없이 구조조정, 국가경쟁력, 성장과 성과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 되는 게 나라의 꿈입니다. 하지만 지극히 작은 자들을 보살피는 슬픔의 파토스 없이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교회 역시 국가 번영의 논리만 있지 지극히 작은 자와 함께 하는 슬픔의 파토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으로 들뜬 교회는 많은데, 주님의 슬픔으로 가슴 찢는 교회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한국교회를 향해 번영의 노래는 그만 부르고, 조가를 부르도록 하시는 지도 모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슬픔의 파토스를 지닌 교회라야 ‘주님의 교회’일 수 있겠기에 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