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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 이름은 미미야.”
“미미? 그럼 미미언니?”
“그래, 어떤 오페라에(라보엠) 나오는 이름이기두 해.”
“그래, 나두 아빠 방에서 들은 적이 있어. 조수미가 부르는 ‘그대의 찬손’두 있어. 그 오페라 중에…….”
“그렇지만 그땐 아직 내 이름이 미미는 아니었지.”
“언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얻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지. 내가 아마 그랬을 거야. 하긴 그게 오히려 과학적이지. 엄마 배속에서 아기씨가 자라기 시작해 이 세상, 아니지, 저 세상으로, 그러니까 엄마 배 밖으로 나오기까지 열 달이 걸리니까.”
“그게 그렇네.”
“…아기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도대체 사람 같지 않더군. 무슨 짐승새끼처럼, 대개의 경우 입술은 메마르구 몸의 겉가죽은 뼈와 따로 노는 것 같이 이리밀리구 저리밀리구, 손발은 아주 작고, 울긴 왜 그렇게 악을 쓰듯 울어쌓는지…….”
“나두 봤어. 아마 텔레비전에서였을 거야. 학교에서 보여줬거든.”
“내가 본것두 마찬가질거야. 미국에서, 그러니까 캘리포니아에서, 어렸을 때 본거니까. 맞아, 그래. 그렇지만, 며칠 지나면 옮겨 심은 꽃모종같이 생기를 찾게 되구 엄마 젖이 돌아 먹고 싸는 신진대사가 시작되지. 그로부터 몇 개월 안에 살이 붙구 손발을 허우적대며 제목소리로 울기도 해. 갓난아기때 우는 울음과 달리, 그 울음소리보다 좀 가라앉은 소리로, 그러니까 이제 좀 살것같다는 이 세상, 아니 저세상 울음 소리로. 자구 헷갈리네.”

“미미언니, 혹시 애기 낳아봤어?”
“얘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잘 알지?”
“언젠가는 낳을테니까 관심있게 보아둔거지 뭐.”
“하긴 나도 그랬으니까.”
“…여하튼 그만치 빠르게 적응하지. 골격을 감싼 살이 피부 겉가죽을 잡아당겨 겉모습을 제법 갖추게 되고, 앙증맞게 작은 손과 발, 손톱발톱이 자라면서 세상에, 그 속에 까만 때가 끼기도 한다니까. 손톱이나 발톱에 때가 낀 아기를 볼 때 나는 반쯤 미쳐. 그 손이 장차 만지게 될 여러 가지 물건, 그 작은 발이 앞으로 딛게 될 이 세상…(아니 왜 이리 헷갈리지? ) 그러니까 저 세상의 여기저기 넓은 땅을 상상하게 되니까 그랬을까? 손은 우선 장남감을 만지지. 연필도 쥐게 될테구. 자동차의 핸들, 도끼와 망치, 호미와 삽, 컴퓨터 자판과 텔레비전 리모콘, 핸드폰도 매만지게 될 거야. 그러저런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하고, 좋은 일로 만세를 부르는가 하면 최류탄 가스에 눈물을 씻을 수도 있을거야.
나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자기보다 훨씬 약한 사람을 완력으로 눌러 주저앉힐 수도있어. 악수를 하거나 따귀를 때릴수도 있고, 소를 몰아 쟁기질도 하게 될거야. 어쩌다 잘못해서 그 손목에 쇠고랑을 차게되거나 이천년 전이었다면, 그 손이 십자가에 달려 못박힐 수도 있어…….”
“정말…….”
“발도 그래. 때로는 밤길을 걷지. 그렇지만 때때로 탄탄대로를 달릴수도 있어. 아주 안전한 길을 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위험한 길을 뛸수도 있어. 질주와 산책, 침략자의 발이되어 남의 뽀얀가슴을 짓밟을 수도 있지만 맨발로 대지를 밟으며 (그래 위대한 평민은 대개 맨발로 밭을 갈거나 풀을 매거든.) 사람으로서 응당 가야할 가시밭길을 피흘리며 걸어갈 수도 있지만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서 한 송이 풀꽃으로 살다가 지는 노을같이 스러질 수도 있는거지…”
“내가 그런셈이네. 태어난 마을에서 한 송이 풀꽃같이, 아니 풀꽃같이까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멋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한참 자라다가 어느날 갑자기 스러진 셈이닌까…”
“난 아기손발을 볼때마다 반쯤 미쳐. 여하튼 반쯤 미친다구.”
미미언니가 다시 말했습니다. 내 말엔 대꾸도 없이 자기 얘기만했어요. 그러다가 부스럭부스럭 이주머니저주머니 뒤지더니, ‘어거 볼래’ 하듯이 주먹을 내밀었어요.
“그게 뭔데?”
“보면 알지.”
“아기 양말이네. 금방 그 아기발에나 맞을 뜬 양말!”
그랬어요. 그건 손수 털실로 뜬 양말이었죠. 끈도 달려있어요. 끈 끝에는 방울도 달리고요. 밑바닥엔 가죽을 댔어요. 미끄러지지 말라고 댄 가죽바닥의 짠 양말.
“그래, 우리 엄마가 짠 내 양말. 얼굴도 모르는 한국 엄마가 날 떠나보낼 때 신긴 작은 내 양말. 미국의 양엄마가 이십여년이나 간직했다가 친엄마 찾아간다니까 꺼내준 양말, 갓난아기적 내 작은 양말!”
미미언니가 흑, 숨을 들이쉬네요.
우리는, 그러니까 별 단 개, 미미언니, 그리고 나는 바닷가에 앉아있어요. 섬사람들뿐만아니라 뭍의 도시에서 온 사람들, 원근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달려온 수많은 인파가 바닷가에 모였어요. 바닷물이 곧 갈라진대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대요. 방송국 사람들도 보여요.
그렇다면, 아까 구경한 그 바리데기 굿도 순전히 미미언니만 위한 굿은 아닐 수도 있네요. 섬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때를 잡아, 여기저기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그런 굿을 한꺼번에 해댔다면, 그러다가 바닷물이 갈라진다는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모두 바닷가로 몰렸다면, 이건 좀 주최측 농간같지 않아요?
별 단 개는 언니곁에 바짝 붙어 앉아 그 무릎에 턱을 얹고 있네요. 언니는 별 단 개 머리를 쓰다듬고요.
“언니 발은 미국까지 간거구나. 시베리아까진 못갔지만.”
“시베리아는 못갔지만 이라크까진 다녀왔지. 거기 전쟁터에서 이리 직행했으니까 . 바리데기 부르는 통에…….”
언니가 내 손에서 아기양말을 가져가며 한 숨을 내쉬었어요. 별 단 개가 미미언니 손을 핥아요. 그 때 사람들 함성이 터졌어요.
“야, 바다가 갈라진다아!”(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