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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우리 엄마랑 아빠가 면회를 갔는데, 그러니까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시니까, 그럴 때 대개 엄마 아빠가 대신 나가거든…….”
“그래, 알아들어. 어서 계속해.”
“그런데, 삼촌이 아빠에게 이랬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무대 위에 세워진 인형극 무대가 금세 그날의 미군 부대가 되어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저만치서 사촌이 달려오고 있다. 슬로비디오 같이, 구리빛으로 탄 얼굴, 걷어 올린 팔소매, 웃음 뛴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아빠가 일어선채 삼촌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무대 위에 서 있다.
그 날은 토요일, 오후 두세 시경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도 엄마 아빠와 동행했던 것이다.
매미가 울고 있었다. 작고 얇은 연초록의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팔랑거리고있었다. 다가온 삼촌이 아빠 앞에 서더니 거수경례를 했다. 뭐라고 구령을 부쳤지만 잘 들리진 않았다. 아빠가 팔을 벌리고, 삼촌이 안겼다. 왠지, 내 콧날이 찡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도 돌아서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삼겹살이 구어졌다. 상추와 쌈장, 고추장과 풋고추, 마늘 등이 펼쳐져 있었다. 김밥도 싸오고, 맨밥도 따끈따근했다. 아빠와 삼촌은 맛있게 점심을 드셨다.
“보라야, 공부 잘하지?” 삼촌이 물었다.
“응, 삼촌 고생 많았지?” 내가 말했다.
삼촌이 젖은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다. 엄마는 기쁜 얼굴로 시중을 드셨다.
“……한국군보다 낫단다.” 삼촌이 말했다.
“다행이구나.” 아빠가 삼촌 말을 받았다.
“그렇지만 형님!” 삼촌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왜?”
“미군과 함께 뛸 때는 영어로 구령을 부치죠.”
“그럴 테지…….”
“그런데요, 형님. 우리끼리 뛸 때는 뭐라는지 아세요?”
“뭐라? 어떻게 하는데?”
“자· 주 ·국 ·방! 자주국방, 그래요. 그러면서 뛰어요.”
“…….”
이번엔 아빠가 손등으로 눈자위를 훔치신다.
그리고 무대암전.

다시 무대에 불이 들어오면, 미 제2사단 본부
거기, 삼촌이 배속돼 있다.
훈련 중인 듯.
삼촌이 총을 들고 지나간다.
막사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막사 안에서 개 소리 들린다.
끙끙, 삼촌이 건물 벽에 총을 세우고
막사 안으로 들어가고, 그 사이
중사 계급의 흑인병사 총을 가져간다.
막사에서 나온 삼촌이
총을 찾는다.
삼촌이 총을 들고 뛰어가고,
삼촌이 총을 들고 밥을 먹고,
삼촌이 총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웨펀가이’ weapon guy하면서 동료들이 놀린다.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어느새 내가 마이크를 들고, 원형의 조명 아래 서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대장의 개가 한 막사에 들어갔다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갇힌 것을 구하려다 무기를 잃어버리고, 그 벌로 일 개월간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된 거죠. 그걸 왜 백구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막내 삼촌이 본부대에 배속되면서 백구를 만났던 거죠.”
그렇지만 동물은 개도 그렇고, 소도 그렇고, 돼지도 그렇겠지만, 사람에 비해 빨리 자라요.
삼촌은 잠시였겠지만 백구에겐 퍽 긴 시간이었겠죠.
삼촌은 집에 올 때마다 백구 얘기를 했어요. 그러다가 진도 출신 대학 후배한테 백구를 맡기고 제대를 했던 거죠.
그 친구가 어느날 백구가 몹시 아프다고 말했을 때, 삼촌은 전후 사정 볼 것 없이 자기가 키우겠다고, 백구를 살리겠다고 나섰던 거죠.(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