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한국전쟁과 기독교’라는 글을 쓴 장병욱 목사는, 한국전쟁 중 목사들의 행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공산주의자들이 기습 남침을 감행해 26일 춘천과 강릉이 함락되고 포천이 붕괴되자 27일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서울을 사수한다”는 녹음반송만 남긴 채 서울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시간 종로 2가 기독교서회 2층 NCC사무실에서는 기독교 지도자 40여 명이 모여 서울의 교회와 양떼의 사수 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한경직 김종대 김린서 강원룡 김유순 박만춘 김유연 유호준(당시 NCC총무) 등 목사들이 참석, 장내는 긴장과 흥분으로 교차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피난을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격한 토론이 오갔기 때문입니다. 그때 1947년 월남했던 한경직 목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서울은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목사들이 항거 한번 못하고 신사참배로 맥없이 천조대신 앞에 무릎을 꿇은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에서라도 양떼를 지키고 수도를 지킬 순교적 각오를 가지자는 지론이었습니다. 결론은 사수. 목자가 양을 버리고 어찌 달아날 수 있겠는가. 달아나는 자는 목자가 아니요 삯군이라는 논리가 깊게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날 중앙감리교회에서 열린 교역자 회의에서도 NCC에서와 똑같은 장면이 재연되고 있었습니다. 이곳 토론에서도 황해도에서 목회하다 월남한 이병남 목사는 강한 서울 사수를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들어 공산 정부가 들어서면 종교가 말살되고 기독교인들이 제일 먼저 희생당할 것이니 공산당에 맞서 서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론에 나선 박설봉 목사는 격한 어조로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가 어떻게 총을 들고 대적하는가. 우리의 사명은 총칼이 아니라 복음 선교다. 사수냐 피난이냐는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도 대세는 서울 사수. 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리는 선한 목자의 표상을 가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28일. 서울이 적의 손에 떨어지기 직전, 그렇게도 강력하게 사수론을 펴던 목사들은 아무도 몰래 보따리를 챙겨 피난을 떠났습니다. 순진하게도 사수론을 믿고 피난을 떠나지 못한 목사들은 지하실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서울이 함락된 지 일 주일 만에 지하실에서 단파방송을 듣고 있던 강원룡 목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한경직 목사가 대구에서 방송하기를 목자는 양과 함께 순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인민군 환영대회를 치렀습니다. 장병욱 목사는 이를 두고 ‘현대판 베드로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교회연합뉴스, 01.6.17 일부 자료를 필자가 재구성)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제사장 바스훌이 있습니다(렘20:1). 예레미야가 재야 목회자였다면, 바스훌은 누구나 우러러보는 예루살렘성전의 담임목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스훌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뒤져서 가장 캄캄한 시대를 대낮같이 밝혀줄 본문을 찾아내는 역량을 지닌’(유진 피터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모든 염려를 완화시킬 수 있도록 해석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만사형통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그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큰 위로를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고. 모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찬란했던 지난날의 영광을 드높이는 그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이 한껏 고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죄악을 질타하는 설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위로와 희망과 성공담으로 가득한 설교만이 나왔습니다. 바스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시대의 죄악들을 마사지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설교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바스훌의 설교를 역겨워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평강하다, 평강하다”(렘8:9b-12a)고 설교하는 자들이 얼마나 가증한지를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바스훌의 눈 밖에 나서 수갑을 차게 됩니다. 바스훌의 눈에 예레미야는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우리 시대의 많은 목회자들이 예레미야를 읽으면서도 바스훌을 닮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