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옥체험

지난 몇 달간 나는 <지옥체험>을 하였다. 24시간 마음속에서 욕이 나오고, 우울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배가 고프나 밥이 안 먹히고 마음이 허전하나 사람이 싫었다. 그 어떤 것에도 순종할 수가 없었고,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불안과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하늘소리 아이들이 미워지고, 사제로서의 내가 ‘이것 뿐이 안된다’는 것이 수치스러워졌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면서 “이러면 안된다”는 죄의식이 차올랐다. 잠이 오지 않거나 하루 종일 잠에 빠지거나 하고 어떤 마법적인 존재라도 나타나서 단번에 나의 모든 고통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사고를 벗어날 수 가 없었다.

아! 드디어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저주를 내리신 것이다. 그 다음의 시나리오는 내가 어린이치유센터 하늘소리 일을 그만두고, 성직자의 삶도 그만 두고,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도 그만 두고, 더 깊은 지옥으로 들어가 마침내 “내가 나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봐! 역시 난 안되는 거였어.” 라고 내뱉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깊은 지옥 속에 꼭꼭숨겨져 있던 <나의 인생극본>이었다. ‘의식의 나’는 선한 곳을 향해 달린다고 왔는데 내 몸 어딘가의 흐름은 이 음습한 인생극본만을 향해 달려왔던 것이다. 이 인생극본 안에는 하나님이 없고, 진실이 없고, 깊음이 없고, 평화가 없다.

2. 돌려쓰는 카드 - 패러다임

이쯤되니 원래 내가 누구였는지 알 수가 없다. 원래 내가 좋아하던 것이 뭔지, 원래 내가 행복하게 느끼던 일들이 뭔지, 원래 내가 살아온 방식과 원래 나의 표현법까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도하라, 감사하라, 온전함을 향해 가라” 등등 인생의 한번쯤 나의 가슴을 울렸을 말씀에 대한 기억과 그 뜨거움의 체험까지도 나는 모조리 잃어버린 것이다. 나의 공격성은 급기야 나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온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구만이 나를 드러낸다.

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있는 어둠의 구조를 캐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이런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이 평생 동안 수많은 이들을 내 안에 살게 하고, 순간순간 그들의 패러다임을 돌려가면서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을 억압하는 구조가 허물어져 오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할머니의 패러다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패러다임, 아버지와 어머니의 패러다임, 고모들과 삼촌들의 패러다임, 오빠와 언니의 패러다임을 기본으로 수많은 이들의 패러다임, 아주 어릴 적 내안에 들어온 그들의 모든 정보들을 나는 내 깊은 곳에 평생 숨겨서 돌리고 있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기본 인물들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순간은 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내가 아닌 순간이다. “내가 나 아닌 다른 이로 사는 것”, 존재를 존재 자체로 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 아닌 곁길로 행한 것이다. 내가 나의 패러다임을 획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니까 당연히 스트레스가 쌓이고 공격적이 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이다.

3. 그럴 수 있지!

그러나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내가 아주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온 인류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 되어 만나고 그렇게 인류의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만났을 때의 우리의 자세와 태도이다.

이 비밀의 열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삼차원의 세계, 이분법의 세계이므로 양면이 내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그럽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영성가들이 보다 높은 차원의 영성을 위해, 나뉜 것들의 통합을 위해 끊임없는 길을 걸었던 것이다. 우리가 “내 안엔 둘 중에 하나, 좋은 것만 있어야 해”라는 실체 없는 울림을 자신의 가슴에서 울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듣고 있는 순간, 그것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좋은 것만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내 안엔 좋은 것만 있어야 해” 할 때 우린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옥체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 의미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온 인류가 이렇게 나 아닌 다른 이들의 패러다임으로 살아가 수밖에 없음을, 이것이 인류의 매트릭스임을 이천년 전 바울은 이미 깨달은걸까?

나는 이젠 내 안의 그 지옥을 인정하며 “그럴 수 있지!”라고 나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곤고한 자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저 푯대를 향해 달려갈 뿐이라는 바울의 고백을 내 가슴으로 따스하게 가져와본다. 오늘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