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9/2011

 

 

 

 

 

 

 

 

 

 

 

 

에니어그램영성(126)

 

# 9번 유형 : 바나바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

제공 :
공동체성서연구원


에니어그램 격언






 


3. 관용하는 사람, 바나바

에니어그램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의문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어찌 아홉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 속에 다 넣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깊이 이해하게 되면 각 유형 안에서도 차이와 다양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결국 음악에서 말하듯이 아홉가지 주제와 수많은 변주곡이 있는 것과 같다.

인성 유형이 그처럼 다양하다. ‘세상에는 벼라별 사람이 다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성격의 다양성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 속에서 살기 마련이다.

에니어그램으로 보면 인성 유형은 아홉 가지이다. 개인의 에니어그램도 집단 또는 사회의 에니어그램도 다양하다. 나라마다 독특한 집합성격 collective personality 또는 국민성 national character이 있다. 개인도 집단도 자기들과 다른 성격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해서 자기와 다른 유형과 성격을 남보다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 #9번 유형들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컨테이너 타입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이고, 갈등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로도 표현된다. 아주 소극적인 상태에서도 이토록 수용을 잘한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면 그 수용 능력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특징을 잘 드러낸 이가 바나바였다. #9번 유형이 소극적일 때는 체념하면서 수용한다. 그러나 바나바처럼 건강한 #9번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 때 관용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관용 tolerance은 다른 것도, 틀린 것도, 모자라는 것도 다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거기서 멈추면 체념이다. 그러나 틀리고 다르고 모자란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되, 비판보다 대안을 찾아주는 적극성을 띄면 관용이 된다.

프랑스어로 ‘똘레랑스’라 표현하는 이 말은 오차, 인내, 허용 범위를 아우르는 말이다. 틀린 줄 알면서도 다음 순간 더 잘 할 것을 내다보며 참아주며 기다리는 것이 관용이다. 바나바는 이런 관용을 가지고 ‘사울’/ 바울도 관용하였고 마가도 관용하였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개인을 관용한 바나바가 평범한 사람들을 더 편하게 받아들였을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A.D.48년에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 Jerusalem Council는 기독교가 처음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교회로 받아들이는 참으로 중대한 역사적 회의였다. 열 두 사도에 들지 않았으면서도 이미 사도(행14:14) 반열에 오른 바나바가 관용의 리더십으로 그 회의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였을까 실감하게 된다.

바나바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행11:24)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았고, 또 그만큼 공헌하였음을 말해준다. 관용하는 사람은 분별력과 결단력이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감정이입과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다. 바나바가 그런 사람이라 하겠다.

짐작하건대, 신학자들이 인정하지는 못해도, 예를 들면 바나바가 히브리서 기자였다든가, 칠십 문도/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든가 하는 후대의 전설은 그를 모두 좋아하고 추앙했다는 방증이 된다.

4. 바나바, 평화를 만드는 사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덕이 있는 사람은 지식이나 권력이나 어떤 힘이 있어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고, 되도록 속으로 감추며 상대방을 편하게, 이롭게 하려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장수 가운데서도 이런 이는 ‘덕장’이라 하였고, 정치를 이런 이들이 하면, 그것을 ‘덕치’라 하였다. 이렇듯 덕이 있는 사람이 책임있는 자리에서 일하고 이바지하면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법이다.

#9번 유형들은 자기가 지닌 것을 마음 놓고 쓰면, 상대방이 불편해질까봐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너무 조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좋은 목소리조차도 속으로 기어들어가듯이 작게 낸다. 어려서부터 조심성을 가지고 자란 #9번 유형은 성장하여 건강하게 되면서부터는 움츠러들지는 않아도 조절하는 능력이 크다. 인내와 관용과 조절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 평화가 이루어진다.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는 힘이 외부의 갈들을 현실 상황속에서 극복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형성될 때, 솔선하여 재산을 헌납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논쟁거리인 바울을 교회가 받아들이고 인정할 뿐 아니라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파송받을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들에게 찾아갔을 때, 바울을 앞세워 설교하게 한 것도 모두 바나바의 넉넉한 인품과 관용의 리더십 덕이었다.

바나바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의 전형이요, 전범 paradigm이라 하겠다. 바울이 교회 안에 등장하였을 때 바나바는 우선적 위치에 있었다. 그가 주선하여 바울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사도행전의 기록도 계속해서 ‘바나바와 사울은’ 하고 기록하면서 바나바를 먼저 언급한다.

그러나 바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 섬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 총독 서기오 바울 곁에 있는 마술사 엘루마라고도 부르는 바예수를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행13:8 - 10) 악행을 그치게 하고 굴복시켰을 때 그 총독이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바울과 바나바’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바나바와 바울은 서열이나 영향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평화롭게 받아들인다. 영향력이 더 커지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루스드라에 갔을 때 일이다.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이’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의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하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행14:8 - 10) 하였을 때 그곳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고,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불렀다’(행14:12).

‘그것은 바울이 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행14:12)라고 하였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을 안 해도 건강한 #9번 유형인 바나바가 있는 그 존재만으로도 평온함 속에 내공이 있고, 저력이 있고, 범할 수 없는 위력과 권위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9번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통합을 이룰 때 ‘무조건적 사랑’으로 대단한 근면과 활동성과 에너지를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물리적인 힘보다 더 큰 힘이 사랑의 힘이다. 바나바가 드러내는 무조건적 사랑의 힘이 평화를 만드는 원천적인 힘이다. 이 사랑의 힘 때문에 평화가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가 살려야 할 원칙이 있다.
평화를 만드는 힘의 구조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 다시 확인한다.

1. 상호이해: 서로 이해하는 자세
2. 상호인정: 상대를 있는대로 인정
3. 상호신뢰: 서로 믿어주는 것
4, 상호존중: 서로 존중하는 자세
5. 상호협력: 공동선 위하여 협력

A.D.61년에 키프로스섬 살라미에서 순교할 때까지 바나바는 인격과 삶을 다하여 살린 이런 힘 때문에 평화롭게 성공적으로 선교를 수행했다.

 

 

 

 

 

 

 

 

 




152-815 서울 구로구 개봉3동 341-21 2층   Tel 02)312-6803, Fax 02)374-7277
  cbs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