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11

 

 

 

 

 

 

 

 

 

 

 

 

  말씀과 삶의 뜨락

 

섬김을 다시 생각한다

 

  말씀과 세상(47)

 

 

 

 

 

 

 

 

 





하태영

목사,
삼일교회.
htyyoung@hanmail.net






 


요즘 교회 현장에서는 ‘섬김의 목회’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습니다. 목회 자체가 섬김에 있음에도 굳이 섬김이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참된 섬김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목회 현장에서 회자되는 섬김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본뜻보다는 섬김의 외형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섬김을 사회적 미덕으로 삼거나, 교회의 자기 확장을 위한 포장지로 사용하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가치 전도된 섬김의 본뜻을 짚어봐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것에 대해 유대인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각기 달랐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자기 부정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했고, 유대인들은 자기 긍정에 의존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바울의 생각보다 유대인들의 생각이 더 매력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실지라도 인간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인간의 행위를 고양시키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인간의 행위를 고양시키는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불러내시는 분”(롬 4:17b)입니다. 그분은 생명을 시간 이편(차안)으로 불러내기도 하고, 시간 저편(피안)으로 불러내기도 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보면 바울에게서 믿음은 하나님의 창조를 향한 자기 개방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이런 믿음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노쇠한 자신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했을 때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창 17:17)라고 냉소했습니다. 이는 자연인 아브라함에게 부딪치는 피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그의 육체는 이미 죽은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불가능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기 부정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음은 불가능(인간)의 가능(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바르트).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말하지만 세상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게 모두 망상에 가깝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칼 바르트는 “아브라함은 마침내 믿음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상식을 포박시켰다.”라고 했습니다. 포박시키다니?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상식이 그만큼 강력하게 믿음에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경험이 믿음을 전복시키는 예는 제자들의 권력투쟁에서도 보게 됩니다. 심지어 두 아들을 둔 어머니까지 나서서 내 자식 높은 자리 달라고 예수께 로비하는 현실입니다(마 20:20-28).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다.” 예수께서 이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섬김을 미덕으로만 여긴다면 섬김의 역동성은 소멸되기 쉽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섬김은 단순한 미덕이 아닙니다. 예수의 섬김은 창조의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저 옛날 모세를 대항한 권력투쟁의 예에서 보듯이, 섬김의 부정은 반역을 초래합니다(민 16:36-40). 그리고 반역은 파괴와 죽음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은 창조의 신비와 함께 뭇 생명을 살리고 세상에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죄됨과 나의 무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죄됨과, 나의 ‘무능’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능’ 즉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 가운데로 나를 개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믿음은 섬김을 동반합니다.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성소에 올라가면서 준비했던 값진 예물(삼상 1:24)은 그의 믿음이 참된 섬김의 발로였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창조의 신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처럼 섬김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메시아가 되신 것은 당신의 몸을 십자가 희생 제물로 바친 섬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섬김-창조, 이 셋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섬김을 단지 미덕으로 여기거나 교회 확장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세속주의의 표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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